오늘의 주제는 여러 번 이야기 한 바 있는 실진법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고 생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런데 이 방법을 아는 것은 고대 그리스 수학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현대 수학, 아니 현대 과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미적분학의 기초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해서 수학의 역사로 보자면 무척 중요합니다.
실진법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실진법 자체의 뜻은 소진시키는 방법, 즉 어떤 양을 측정할 때 남은 양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면 탈탈 털어서 소진시켜 나가자는 의미의 방법입니다.
쉽지 않은 내용이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막막한데요, 마침 또 한 가지 이야기해야 할 중요한 주제가 있어서 같이 엮어서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비례라는 주제입니다
비례식 a:b=c:d의 성립 조건은 잘 알려진 대로 ad=bc입니다.
즉, 외항의 곱과 내항의 곱은 서로 같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이 관계식은 서기 11세기의 오마르 하이얌(AD 1048 ~ AD 1131)이라는 페르시아 수학자의 시대로 와서야 겨우 알 수 있었던 관계식이었습니다.
//(수정필요) 원론 7권 명제 19 네개의 수가 비례를 이룬다고 하면 첫번째와 네번째의 곱은 두번째와 세번째의 곱과 같다. 만약 첫번째와 네번째의 곱과 두번째와 세번째의 곱이 같으면 네 개의 수는 비례를 이룬다!!!
7권의 정의20도 참조하여야 함…숫자의 비례에 대한 [VII권 정의 20]은 [V권 정의 5] 즉, 크기에 대한 비례의 정의와 동일하지는 않다 . 수에 대한 이 정의는 아마도 더 이른 것이었지만 모든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크기에 대한 비례를 적절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례에 대한 생각은 이랬습니다.
예를 들어 4:6과 6:9은 같은 비인가?
앞의 비에서는 공통의 척도 2를 이용하여 측정하면 각각 2번, 3번
뒤의 비에서는 공통의 척도 3을 이용하여 측정하면 각각 2번, 3번
그러므로 두 비는 서로 같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비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만물은 수이다(All is Number).
수와 수 사이를 단 하나의 근본적인 단위수로 측정하면서 질서의 우주, 만물 사이의 질서가 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례론은 약점이 있습니다. 무리수, 즉 ‘공통의 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양’ 의 존재 때문입니다. 무리수의 발견은 수와 비례의 개념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현대의 우리에게 실수의 개념은 이미 자연스럽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들의 고민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서로 성질이 전혀 다른 크기들이 존재하는데, 그 크기들을 하나로 묶어서 ‘수’라는 상위 개념을 만들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비례에 대한 만족스러운 정의는 에우독수스(BC390-BC340)에게서 나왔습니다. 아르키메데스(BC287-BC212) 이전에는 그리스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수학 천재로 여겨졌습니다.
에우독수스는 그리스 수학을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 중심에서 과감하게 기하학적인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에우독수스의 결단은 그의 천재성과 더불어 그리스 수학을 공리적 기하학으로 발전시켰고, 대수학을 포함한 수론의 발전은 그 이후 2천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비율이 서로 같다라는 말의 완성된 정의는 무엇일까요? 유클리드의 원론 5권의 다섯 번째 정의입니다. 원론 5권의 내용은 아마도 거의 전부가 에우독수스의 생각으로 채워져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네 개의 크기가 있는데,
첫째와 둘째의 비, 셋째와 넷째의 비가 같다는 말은
첫째와 셋째에 같은 수를 곱해 배수를 취하고
둘째와 넷째에 다른 어떤 수를 곱해 배수를 취했을 때,
전자들이 후자들보다 동시에 더 크던가, 같던가, 작은 것이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a:b=c:d라는 것은
임의의 두 자연수 m, n에 대해서
ma>nb이면 mc>nd이고,
ma=nb이면 mc=nd이고,
ma<nb이면 mc<nd
이 성립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복잡하죠? 그런데 왜 이렇게 해야만 했을까요? 두 수 a, b가 ‘공통의 척도로 측정할 수 있는 양’일 필요가 없습니다. 비교는 a, b를 각각 몇 배하여 그 배수들끼리 크기 비교만 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그럼 이제부터 실진법과 결합된 비례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원의 넓이는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원론 12권의 명제2의 증명입니다.
“다각형의 넓이비는 닮음비의 제곱비와 같다”
이 내용은 쉽게 증명됩니다. 결국 문제는 이 주장을 원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느냐?
원의 넓이 역시 그러하냐? 입니다.
다각형에서 사용했던 논리를 어떻게 원에 적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질문의 핵심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의 넓이는 ‘공통의 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유클리드의 설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두 원이 있습니다. 먼저 원의 넓이의 비가 지름의 제곱비와 같지 않다고 가정합니다.
이제 한 원1을 기준으로 삼아 지름의 제곱비와 맞추어 제 3의 원을 그립니다.
그 원은 원2에 대하여 크거나 작을 것입니다. 작은 경우 만을 따져보겠습니다.
원2와 원3의 넓이차라는 양을 생각합니다. 이 양을 D라고 하죠.
여기에서 바로 실진법의 핵심 명제가 등장합니다.
어떤 양으로부터 절반 이상의 부분을 빼내고, 다시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절반
이상의 부분을 빼내는 과정을 계속하면, 결국 나머지는 정해진 적은 양보다 더
적어진다(유클리드 원론 10권 명제1)
원2에 정사각형을 내접시킵니다. 정사각형과 원의 넓이 차(=D_1)를 D와 비교합니다. 만약 D가 크다면 정팔각형을 다음과 같이 내접시킵니다.
정팔각형과 원2와의 넓이차(=D_2)는 어떤가요? D_1에서 절반 이상의 부분을 빼냈습니다.
다음 그림을 보면 확실하죠?
D_2를 D와 비교합니다.
D보다 작아질 때까지 변의 수를 늘려가면서 반복합니다.
편의상 D_2가 D보다 작아졌다고 가정하죠.
정팔각형의 넓이와 원2의 넓이와의 차이는 원2와 원3의 넓이 차이보다 작아졌으니
그렇다면 정팔각형의 넓이는 원3의 넓이보다 커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원1 안에 정팔각형과 닮음인 도형을 내접시킵니다.
다각형이니 이 두 정팔각형 사이의 넓이비는 정확히 지름의 제곱비와 같습니다.
즉 원1의 넓이비와 원3의 넓이비입니다. 그런데 원1보다 정팔각형1이 작기 때문에 처음에 작도한 정팔각형의 넓이는 원3의 넓이보다 작아야 합니다.
모순이 얻어졌습니다.
결국 모순에 의한 논증으로 원의 넓이비는 지름의 제곱비와 같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실진법과 결합된 유클리드, 아니 에우독수스의 비례론입니다.
//쇼츠1
무리수의 등장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례론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다음의 비율은 같습니다.
나무 도막 4개 : 나무 도막 6개 = 나무 도막 6개 : 나무 도막 9개.
피타고라스 학파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앞의 비율은 나무 도막 2개를 공통의 기준으로 하면 두 묶음과 세 묶음,
뒤의 비율은 나무 도막 3개를 공통의 기준으로 하면 역시 두 묶음과 세 묶음.
그러므로 ‘서로 같은 비’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 방식으로는 “높이가 같은 두 삼각형의 넓이비는 밑변의 길이비와 같다”라는 단순한 명제도 증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두 밑변의 길이가 어떤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그 대각선의 길이가 같다면 어떨까요? 피타고라스 학파라면 바로 “멘붕!”입니다. 정사각형의 한변의 길이와 그 대각선은 공통의 척도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대각선의 길이의 비율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그리스 수학의 또다른 천재 에우독수스는 이러한 비율도 다룰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화면)-정의 5
//쇼츠2
실진법의 핵심이 되는 명제입니다.
너무 당연한가요?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사실조차 증명의 대상으로 삼았던 그리스 수학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증명했을까요?
다음 사실을 이용했습니다.
이것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만, 하나의 공리입니다. 공리란 더 이상 증명하지 말고 논증의 시작점으로 삼자는 명제입니다. 아르키메데스의 공리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정작 아르키메데스는 에우독수스의 공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실진법 또한 에우독수스가 그 논리적인 뼈대가 완성했으며 그의 손을 거친 실진법은 아르키메데스로 전해져 엄밀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제 증명해 볼까요? 간단하긴 합니다. 한 크기를 4 배해서 다른 크기보다 커진다면 거꾸로 다른 크기에서 절반 이상을 잘라나가는 작업을 4번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