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채우는 곡선
자연수 집합의 공리 체계를 만들어낸 이탈리아의 수학자 페아노는 1890년에 연속이면서도 평면을 채우는 함수를 만들어냈습니다. 폐구간 [0,1]에서 정의된 연속인 함수로써 정사각형 [0,1]×[0,1]을 완전히 채우(고도 남)는 함수를 만들어 냈는데요, 자,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페아노의 창조적인 생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페아노가 처음 만들어낸 함수는 너무나 해석학적인데다가 어려워서 쉽게 이해하기에는 힘든 점이 많습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페아노 이후에 힐베르트와 같은 수학자들이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이를 해설한 방법을 가져와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오늘의 영상을 보고 도대체 차원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회의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폭이 없는 선으로 폭이 있는 평면을 채워나간다는 페아노의 생각은 대담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입니다. 넓이가 없는 선분으로 넓이가 있는 평면을 채워 나가는 작업은 우리의 직관에 더구나 그리스 시대 이래의 직관으로부터 보았을 때 매우 반직관적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두 번의 과정으로 쉽게 평면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무한 번의 조작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하지만 어렵게만 생각할 건 없습니다. 창의적 생각으로 방향을 잡아서 일정한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반복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무한의 마법이 알아서 해결해 줍니다. 만드는 방법의 요점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꺾어진) 선분들을 통해서 평면을 골고루 돌아다니는(?) 함수를 만들고 다음 단계로는 평면을 더욱 골고루 돌아다니는 함수를 만들고, … 그렇게 한없이 계속해 보자 입니다. 힐베르트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우선 정사각형 [0,1]×[0,1]을 4등분합니다. 그 안에 ㄷ자를 세워 놓은 듯한 다음과 같은 기본도형을 만듭니다.
그 다음에는 말이죠, 선분 [0,1]을 4등분하여 각각의 등분된 부분이 정사각형을 네 등분한 영역에 존재하는 기본도형의 각 부분에 대응되게끔 함수를 만듭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선분을 네 등분하여 각 부분을 고무줄처럼 일정하게 늘이거나 또는 줄이거나 또 구부려서 기본도형의 각 부분에 차례대로 갖다 붙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위의 기본도형에 편의상 표시한 점에서부터 시작하여 화살표 부분에서 끝나도록 차례로 붙일 수 있겠죠?
두 번째로는 정사각형을 네 등분한 부분들을 다시 넷씩으로 등분한 후 기본도형을 다음 그림과 같이 네 개의 작은 기본도형들로 변형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들을 (점선으로 표시한 것처럼) 차례로 이어서 하나의 연결된 도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네 등분하였던 선분 [0,1]을 다시 넷씩으로 등분합니다. 그러면 모두 열여섯 등분이 되겠죠? 이렇게 각각 넷씩으로 등분한 (토막) 선분들과 조그마한 네 개의 ㄷ자를 연결하여 만들어진 도형의 각 부분들을 처음과 같은 방법으로 차례차례 대응시킵니다. 그러면 선분 [0,1]과 하나로 이어진 전체 도형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사실상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은 새로운 게 없습니다. 단지 반복입니다. 즉 작은 기본도형들에 대해서 또 다시 더 작은 네 개의 기본도형으로 만드는 (그리고 이들을 잇고 선분 [0,1]의 각 등분된 부분과 대응을 만드는) 작업을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작업들이 뜻하는 바를 생각해 봅시다.
정사각형 안에 존재하는 점의 좌표들을 이진법을 이용하여 표현해 보았을 때, 처음 정사각형을 네 등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즉 정사각형 안에 존재하는 점들을 (0.0…, 0.0…), (0.0…, 0.1…), (0.1…, 0.0…), (0.1…, 0.1…)과 같은 네 부류로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2진법으로 표현하였을 때 소수점 아래 첫째 자리가 0이냐 1이냐에 따라 구분해 본다는 뜻이죠. 한편 선분 [0,1]을 네 등분한다는 것은 (역시 2진법으로 표현하였을 때) 선분에 속하는 점들을 0.00…, 0.01…, 0.10…, 0.11…과 같이 2진법으로 처음 두 자리에 따라 구분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수를 만든다는 것은 기본도형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이들 네 부류들을 순서대로 대응시킨다는 뜻을 갖습니다.
이제 두 번째의 단계를 생각해 봅니다. 정사각형의 각각의 영역을 다시 네 등분한다는 것은 각각의 좌표들을 소수점 아래 둘째 자리에 의해서 구분해 본다는 것이며, 선분 [0,1]을 다시 네 등분한다는 것은 2진법으로 다음 두 자리(셋째 자리와 넷째 자리)에 의해서 0부터 1까지의 수들을 구분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수를 만든다는 것은 이렇게 만들어진 16개의 영역과 16개의 작은 선분들 사이에 대응관계를 만든다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때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두 번째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함수는 첫 번째의 과정으로 만들어진 함수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두 번째의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함수는 처음 과정에서의 함수가 (예를 들어) 0.00…인 수들을 (0.0…, 0.0…)에 대응시킨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두 번째의 함수는 소수점 이하 다음 두 자릿수를 세분하여 첫 번째의 함수가 대응시켰던 영역 안의 (역시 세분된) 영역으로 대응시키고 있을 뿐 그 영역을 벗어난 다른 영역으로 대응시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동일한 작업의 반복이 뜻하는 바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동일한 작업의 반복이란 (이진법으로 표현된) 선분 [0,1]의 각 수들을 소수점 이하 두 자리씩으로 끊어 그에 대응되는 (역시 이진법으로 표현된) 점의 각 좌표의 소수점 이하의 자릿수들을 차례로 정해 나간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선분 [0,1]을 한없이 늘어나는 선분으로 만들고 그러면서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선분 [0,1]의 각 점(=수)에 정사각형 [0,1]×[0,1]의 각 점을 대응시키는 하나의 함수에 대한 대응규칙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함수를 만들었습니다.
함수를 만드는 과정이 잘 이해되셨나요?
페아노의 의도를 잘 받아들이셨다면
힐베르트의 해설에 따라 만들어진 위의 함수가 어떻게 선분 위의 점을 정사각형의 점으로 대응시키는지와 또 정사각형에서 임의의 점을 잡았을 때 그에 대응되는 선분 위의 점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과연 평면이 완벽히 채워지는구나라는 사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함수에 대해서 두 가지의 성질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렇게 만들어진 페아노의 함수는 놀랍게도 연속인 함수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일차원적인 선분을 연속적으로 한없이 늘려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차원적인 정사각형을 완전히 채울 수 있었습니다. 페아노는 선분의 본질적인 특성을 유지시킨 채 한없이 길게 잡아 늘이는 과정을 통해서 평면을 빠진 곳 없이 채웠습니다.
또 한 가지는 페아노의 함수는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선분 위의 서로 다른 점이 평면 위의 같은 점을 가리키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평면은 완벽히 채워집니다. 아마도 이로부터 어떤 사람들은 평면 위의 점보다 직선 위의 점이 ‘더 많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페아노 곡선을 잘 이해해 보기 위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선분 위의 점 2/3가 정사각형의 어느 점에 대응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3를 이진법으로 표현합니다.
2/3=0.10101010…(2)
이제 이를 두 자리씩으로 나눕니다.
= 0.10/10/10/10/10/10/…(2)
두 자리씩 끊어서 10인 경우에는 항상 오른쪽 위 정사각형 위치를 가리켰었죠? 이제 다음 그림들을 보세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2/3에 대응하는 점을 찾을 수 있는지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이 그림들을 통해 우리는 2/3가 (0.111…(2), 0.111…(2))로 정해지는 점 즉 (1, 1)에 대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2/3, 2/3)에 대응하는 점 (가운데 하나)을 찾아보죠. 역시 2진법으로 표현하면
(2/3, 2/3) = (0.10101010…(2), 0.10101010…(2))
이 되며 이를 그림을 통해 살펴봅니다. 사각형을 나누어가면서 그 위치에 해당하는 이진법의 수 두 자리씩을 찾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따라서
0.10/00/10/00/10/00/…(2)
= 8/15
이 (2/3,2/3)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제 여러분들은 위와 같은 예들을 통해 하나의 “잘 정의된” (“연속인”) 함수가 평면을 “완전히 채우”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답니다.
이렇게 일차원적인 선분을 이용하여 이차원의 평면을 완벽히 채웠습니다.
도대체 차원이란 성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1차원과 2차원은 서로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걸까요? 좋은 생각의 소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