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상은 제논의 역설 중 경기장의 역설로 알려진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대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논 그대여,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다시 생각해 보세. 아킬레우스가 아주 날쌔니까 아킬레우스가 열 걸음 거리를 움직일 때 거북이는 다섯 걸음 거리를 움직인다고 생각해서 이야기를 해보겠네. 만약 결승 지점이 100걸음 거리에 있고 거북이는 30걸음 거리 앞에서 출발한다면 아킬레우스가 결승지점에 도착했을 때 거북이는 80걸음 거리에 있으니 분명 아킬레우스가 앞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평범함 논리인가요? 여기에서 사용된 역설을 반박하는 논리는 무엇이죠?
시간과 공간 사이의 비율, 즉 속도 개념을 들고 와서 경기의 결과를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제논의 논리는 당연한 듯한 일상의 상황을 가져와 딱히 반박하기 힘든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에 그 신박함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논은 과정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추월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무한한 과정을 강조하여 불가능성을 짚어 가고 있는 제논의 논점을 저와 같은 논리로 피해갈 수 있을까요?
아마도 경기장의 역설은 이러한 반박을 다시 논파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 마디로 당신은 빠르기, 즉 공간과 시간 사이의 비율을 이야기하지만 그 비율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입니다.
같은 체격을 가진 여럿의 경기자들이 두 줄로 늘어 서 있다. 각 줄은 같은 수의 경기자로 구성되어 있고, 반대 방향으로 동일한 속도로 진행하면서 경주로에서 서로를 지나가는데, 한 줄의 경기자들은 경주로의 끝점과 중간 지점 사이의 공간을 차지한 상태에서 달리기 시작하고 다른 줄의 경기자들은 경주로의 중간 지점과 시작점 사이의 공간을 차지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만약 한 줄의 경기자들은 제자리에 서 있고 다른 한 줄의 경기자들만 달려간다면 두 줄의 경기자들이 모두 움직일 때에 비해서 두 줄이 겹쳐지는 데까지 두 배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그러면서 제논은 이야기합니다.
같은 속도일 때, 같은 거리는 동일한 시간에 관통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움직이는 물체가 동일한 속도로 정반대로 서로 운동한다면, 정지한 것에 비해서 두 배 빠르게 된다. 이래서 운동의 법칙은 사실에 반한다.
이 역설은 보통 상대속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라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는 없기에 섣불리 상대속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접목해 볼까요? 특수상대성 이론의 핵심은 빛의 속도는 불변이다라는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를 빛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서로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관찰자들에게 빛의 속도는 같아야 합니다. 결론은 무엇이죠? 관찰자에 따라서 시간이 달라져야 합니다. 결국 시간의 절대성을 부인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경기장의 역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근원적으로 이산적이고 불연속적인 점으로 이루어졌을 경우에 운동이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이 이 세계가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는 연속체로 이루어졌을 경우에 운동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것에 대비된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간단히 고대 그리스의 철학사를 이야기하면서 제논의 입장을 조금 변호해 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가운데 소크라테스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심원하고 가장 영항력 있는 철학자를 찾아본다면 단연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가장 깊이 사고했던 지점은 모든 개별적 사물이 불안정하게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도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이런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엘레아 학파의 창시자이며 제논의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말했습니다.
“단지 존재만이 있고 비존재는 없어 사유될 수도 없다.”
“존재는 시초도 없으며, 없어지지도 않는다. 존재는 비존재로부터 만들어질 수도 없거니와, 비존재로 되어지지도 않는다.”
“존재는 운동하지 않으며 불변적이고, 어디서나 그 자체로 동일하”(다).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제자 제논은 세계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를 날카롭게 반박함으로써 스승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기 대화편에서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로 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운동 자체를 부정하려는 제논의 역설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