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하지만 믿을 수 없다(27)-평행선공리

증명27-평행1

그동안 제논의 역설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영상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오늘 영상부터는 평행이라는 개념을 다루어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 대한 내용 가운데 마지막 내용이며 수학사적으로 가장 관심을 받았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기하학의 모범을 만들어 낸 결과물이 바로 유클리드의 원론입니다. 사실 그리스 당시에는 기하학이 수학이었기에 수학의 모범을 만들어 낸 저작입니다. 오늘날의 수학도 그 체계 자체를 보면 원론의 논리 구조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수학의 모범으로써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해석학이 아무리 발전했을지라도 수학자들은 기하학을 배움으로써 수학에 입문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 개념과 몇 가지의 명백한 공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론의 순수한 연역적 체계는 그 모든 우아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론의 체계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원론은 23개의 정의로부터 시작합니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정의1)
선은 폭이 없는 길이이다.(정의2)

평행선은 양쪽으로 끝없이 늘려도 어떤 쪽에서도 서로 만나지 않는 같은 평면에 있는 두 직선이다.(정의23)

이어서 다섯 가지의 공리가 나옵니다.

서로 다른 두 점이 있을 때, 이들을 잇는 선분을 그릴 수 있다.
임의의 선분은 연장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점이 있을 때, 한 점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점을 지나는 원을 그릴 수 있다.
모든 직각은 서로 같다.
두 직선이 한 직선과 만날 때, 같은 쪽에 있는 내각의 합이 2 직각보다 작으면 이 두 직선을 연장하면 그쪽에서 반드시 만난다.

그리고 논리 전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 다섯 개가 나오네요.
1. 똑같은 것과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2. 같은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그 더한 전체는 여전히 같다.
3.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을 덜어내어도 그 나머지들은 여전히 같다.
4. 포개어서 같은 것들은 서로 같다.
5. 전체는 부분보다 크다.

이제 그 다음으로 기하학의 명제들이 제시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의 명제는 주어진 선분으로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다입니다.

그런데…..유클리드 기하학의 한 공리가 수학자들을 다소 불편하게 했습니다. 수학자들은 그 공리의 진실성을 결코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공리는 다른 공리들이 가지고 있는 우아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다분히 미학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공리는 바로 평행선 공리 또는 흔히 유클리드의 제 5 공리라고 불리는 공리입니다.

다른 공리들에서 보여지는 단순성은 기하학 체계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는 명쾌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클리드의 제 5 공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유클리드가 서술한 형태의 평행선 공리는 처음부터 너무 복잡하다고 여겨졌는데, 이 모든 비난의 중심에는 “한없이 연장하면”, 아니면 “계속해서 연장하다 보면”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바로 그 표현 때문이라는 점이 확실합니다. 무한한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확정적이지 않음을 뜻한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평행선 이론을 엄밀하게 증명하려는 노력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부의 수학자들은 평행선 공리에서 간결함이 결여된 이유가 평행선 공리는 공리가 아니라 정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평행선 공리는 다른 공리들로부터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AD 5세기 무렵의 그리스 철학자 프로클로스 역시 평행선 공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공리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증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정리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하학자가 단지 그럴 듯한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사학자에게 과학적인 증명을 물어보는 것만큼이나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했고, 시미아스는 있음직한 것을 증명으로 간주하는 사람을 엉터리로 생각했다고 플라톤은 알려주었다.

프로클로스는 “평행선 공리가 단순히 그럴 듯하다”고 하여 “즉각적인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추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프로클로스의 주장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에, 두 직각보다 작을 때 직선들이 가까워진다는 사실은 옳고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더욱 연장할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만날 것이라는 주장은 그럴 듯하지만, 이것이 참임을 밝혀주는 어떤 논증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필연적일 수 없다. 한없이 접근하지만 결코 만나지 않는 선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일어날 성싶지 않고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류의 선에 대해 이것은 충분히 확인된 진실이다. 그러한 선들에게서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직선의 경우에도 가능하지 않을까?

프로클로스는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당연히 서로 만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만나지 않는 (곡)선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직선에 대해서도 비록 직관적으로는 서로 만날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두 직선이 반드시 만난다는 주장을 증명도 없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기울어진 직선들이 만난다는 사실은 직관의 결과가 아니라 증명의 결과여야만 한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프로클로스의 주장은 많은 기하학자들의 생각을 나타내 주고 있었던 입장이었습니다. 이 주장에 대한 지지자들은 무엇보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를 증명(!)할 수 있기를 원했으며 평행선 공리의 증명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과학사에서의 많은 주장 가운데 단 한 개를 꼽았을 때 가장 유명한 문장”으로 유클리드의 제 5 공리를 위치시켜 놓게 할 만큼 컸습니다.

우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 보기 위해서 간단히 증명을 시도해 볼까요?

먼저 한 직선과 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수선을 그리고 한 점에서 수직인 직선을 긋습니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요? 경우를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만나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이게 가능할까요? 만약 만난다면 대칭과 합동에 의해서 반대쪽으로도 똑같은 상황이 가능합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서로 다른 두 직선이 서로 다른 두 점에서 만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 상황은 많이 곤란한 상황입니다. 서로 다른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오직 하나라는 거의 공리급의 성질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결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두 점이 사실은 하나의 점으로 서로 일치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 원처럼 둥그런 선을 직선으로 받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수학자라 해도 이런 주장들을 하기는 힘들겠죠? 포기해야 할 다른 공리 수준의 성질들이 자꾸만 생기기 때문에 이 상황은 제외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겁니다. 그러니까 수직으로 이렇게 그은 선이 서로 만나지 않는, 즉 평행선이라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 약간 비스듬히 그은 직선은 만날 수 밖에 없다라는 명제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는 주장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프로클로스 자신은
두 개의 평행선이 있다. 세 번째의 직선이 그 중 하나의 평행선과 만난다면 그 직선은 나머지 다른 평행선과도 만난다
라는 명제로 평행선 공리를 변형하였고 다음과 같이 증명하였습니다.

두 평행선을 각각 l,m이라 하고 세 번째의 직선을 n이라 하자. m과 n이 P 에서 만난다. P에서 직선 l에 수선의 발 Q를 내린다. 점 P에서 직선 n 위에 반직선을 잡는다. 직선 l이 놓여진 방향으로 잡는다. 반직선 위의 한 점 Y에서 직선 m에 수선의 발을 내려 X라 하자. 점 Y 를 P로부터 멀게 할 수록 , X와 Y 사이의 거리는 어떤 주어진 값보다 커진다. 만약 XY의 길이가 PQ의 길이보다 커진다면 직선 n 은 P 와 Y 사이의 어떤 점에서 직선 l과 만나게 된다.

어때요? 이게 프로클로스의 증명입니다. 이 증명을 받아들인다면 평행선 공리가 아니게 됩니다. 평행성 정리가 되겠죠.
언뜻 보면 완벽한 증명이죠?! 과연 잘못된 부분이 있어 보이나요?
기하학의 증명은 너무도 당연한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데요, 자칫 잘못했다간 직관적으로 당연한 주장을 증명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잘못을 찾기가 아주 힘듭니다. 프로클로스의 직관적인 가정이 무엇인지 잘 찾아보세요.

제논의 역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역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소개한 영상 기억하시나요? 저는 역설이 옳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핵심은 숨겨진 가정이 존재한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비율인 속도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만날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할 수도 있기에
과정만을 통해서는 결코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는 입장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요,그 주장에 동의하신다면 여기에서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에서는 혹시 숨겨진 가정이 없을까요?

프로클로스의 증명은 결국 이럴 수 없다는 겁니다. 혹은 이럴 수도 없다는 겁니다.
숨겨진 가정이란 바로 평행선 사이의 간격은 항상 일정하다라는 암묵적 주장입니다. 프로클로스 자신이 당연해 보이는 사실일지라도 “(이것이) 참임을 밝혀주는 어떤 논증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필연적일 수 없다.”라고 평행선 공리에 대한 유클리드의 입장을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일정한 간격이라는 성질이 평행선의 독특한 성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다시 증명의 대상이나 공리의 대상이 됩니다.
어때요? 숨겨진 가정을 찾아내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죠? 결국 프로클로스도 증명을 완성하지는 못한 셈입니다.
다음 영상에서는 다른 수학자들이 시도한 좀 더 정교한 증명들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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