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쉬운 문제를 하나 풀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저번 영상에서 소개하였던 아랍의 수학자 알콰리즈미가 소개하는 문제입니다. 알콰리즈미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유산상속의 문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17마리의 낙타를 남기고 죽었다. 첫째 아들에게는 낙타의 2분의 1을 주고, 둘째 아들에게는 낙타의 3분의 1을, 셋째 아들에게는 낙타의 9분의 1을 주어야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낙타들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알콰리즈미는 17마리의 낙타를 도대체 어떻게 나누었을까요? 해설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와서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라. 내가 가져온 낙타 한 마리를 합쳐 모두 18마리를 만든 후 유산분배를 하겠다.”
그는 첫째에게는 낙타 9마리를, 둘째에게는 낙타 6마리를, 셋째에게는 낙타 2마리를 주었고, 남아 있는 자신의 낙타를 되찾았다.
들어본 적이 있는 문제인가요? 이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번 시간에는 알콰리즈미의 방법을 따라서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보다 높은 차수의 방정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알콰리즈미의 업적을 이어서 아랍문명권에서는 대수에 대한 이론들이 많이 발전하였고, 11세기에 이르러서는 페르시아의 시인이자 수학자 오마르 카이얌 (1048~1131)이 삼차 방정식 이론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카이얌은 특이하게도 시인이자 수학자였습니다. 그의 시를 하나 감상해 볼까요?
그는 초기 논문에서 삼차 방정식이 두 개 이상의 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컴퍼스와 자를 사용하여 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카이얌은 기하학적 해를 찾았는데, 그의 후기 작품인 Treatise on Algebra, 대수에 관한 논문 에서
그는 원뿔 곡선들 사이의 교점을 통해 삼차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를 찾아 내는 방법을 밝히고 있으며 그에 따라 삼차 방정식에 대한 정교한 분류를 작성했습니다.
카이얌의 방법을 하나 볼까요?
카이얌은 기하학적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삼차방정식의 근을 추출하기 위한 대수 공식을 내놓으려고 시도했지만, 완전한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근을 대수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뒤를 이을 사람들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인 해법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연구는 유럽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야기는 먼저 사차방정식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시종이었다가 제자가 된 로도비코 페라리는 1540년 4차 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하였습니다.
방법의 핵심만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사차방정식이 있습니다.
나눕니다.
식을 이렇게 변형할 수 있네요. 3차항의 계수를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프로 생각하자면 평행이동했습니다.
그럼 사차방정식의 모양은 이렇습니다.
그런데 만약 일차항의 계수가 0이라면 쉽습니다. 사실상의 이차방정식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떨까요? 페라리는 여기에 단순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습니다. 인수분해된다고 가정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합차공식을 씁니다.
완전제곱을 만들고 … 이때 이 식이 완전제곱식이 되면 좋겠네요. 판별식입니다.
아 여기에서 3차방정식이 나오네요. 3차방정식을 풀 수 있으면 임의로 주어진 4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3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몰랐거든요.
다행스럽게도 그보다 몇 년 전인 1535년에 이미 3차방정식의 풀이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더듬이 니콜로, 니콜로 타르탈리야였습니다.
타르탈리야는 카르다노에게 풀이법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고 세 가지 유형의 삼차방정식에 대한 자신의 풀이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니 풀이법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었다가보다는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실마리를 주면서 꼭 맹세까지 받아야 했을까요? 놀랍게도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일종의 수학승부가 유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승부에서 이긴 사람은 명예와 함께 상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꽤 돈벌이가 되었답니다.
타르탈리아가 유명해진 것도 안토니오 피오르라는 사람과의 수학승부에서 완승했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 피오르는 볼로냐 대학교의 수학교수 시피오네 델 페로의 제자였습니다. 페로는 이미 삼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타르탈리아 보다 먼저 말이죠. 스승인 델 페로는 죽기 직전에야 겨우 그 비밀을 제자 피오르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자신만만했던 피오르는 타르탈리아에게 서로의 명예와 상금을 건 수학 승부를 제안했지만 결과는 피오르의 완패였습니다. 타르탈리아는 피오르가 낸 30문제를 모두 풀었지만 피오르는 타르탈리아가 낸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했습니다.
사실 피오르의 스승인 델 페로는 x^3+mx=n꼴의 3차방정식 풀이법을 발견했습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삼차방정식의 일반해 공식이 바로 이 형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완벽한 풀이법을 발견한 듯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계수가 음수인 경우를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음수 개념 자체가 확실하지 않았고, 방정식은 아직 기하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5라는 질문에 대해서 지금의 우리는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아주 쉽게 음수2라고 대답합니다. 이미 음수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비롯하여 이후로도 오랜 동안 수학자들은 3-5에 대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우리가 같은 형식의 삼차방정식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당시의 수학자들은 계수를 양수로 만들어야만 했고, 방정식의 유형을 다르게 분류했습니다.
그러니까
x^3+mx=n 와
x^3=mx+n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삼차방정식이었습니다.
델 페로는 앞의 꼴, 즉 x^3+mx=n형식을 풀었던 것이며 x^3=mx+n 또는 더 나아가서는 x^3+mx^2=n과 같은 꼴에 대해서는 풀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타르탈리아의 실마리로부터 방법을 깨달은 카르다노는 결국 일반적인 해법에 이르는 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카르다노는 음수의 사용을 넘어서, 음수에 대한 제곱근을 마구마구(?) 사용하기까지 하였는데,
“이것은 궤변적이며 실용적인 용도는 없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어찌보면 수학사에서 증명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이후
엄밀함 보다는 자유로움이 승리한 첫번째의 예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카르다노는 삼차방정식에 대한 타르탈리아의 기여와 자신의 연구, 자신의 제자인 페라리의 사차방정식에 대한 해법을 묶어
1545년 위대한 예술(Ars Magna)이라는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책의 출판 이후 타르탈리아는 까르다노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비밀을 밝혔다며 남은 평생 까르다노를 비난하며 깎아내리려 했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거짓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책을 출판하기 전에 카르다노는 델 페로의 유품인 원고를 보며 타르탈리아보다 앞선 델 페로의 해법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위대한 예술 출판 이후인 1548년 8월 밀라노의 한 성당에서
페라리와 타르탈리아와의 수학승부가 많은 군중이 모인 가운데 벌어졌고
이 승부에서 페라리가 완승을 거두면서 카르다노의 해법이 확실히 타르탈리아의 방법보다 일반화하였음을 확실히 확인시켜 주었다고 하네요.
카르다노의 방법을 따라서 삼차방정식을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삼차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변형이 되니 여기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차방정식에서와 똑같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완전세제곱으로 묶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세제곱식을 변형한 식을 이용하겠습니다.
이것을 하나의 틀로 해서 맞추어 봅니다.
손쉽게 맞추어 볼 수 있겠죠?
이제 에이 세제곱과 비 세제곱에 대한 식을 먼저 풀면 되겠군요. 이차방정식입니다.
근의 공식에 집어넣어 근을 구합니다.
세제곱근을 이용하여 에이와 비를 구합니다.
이제 끝입니다.
방법을 정리해 볼까요? 사차는 삼차로, 삼차는 이차로 내려서 풉니다.
결국 사칙연산하고, 이차방정식으로 끌어내리고 그리고 세제곱근을 구한다입니다. 그런데 이차방정식은 결국 제곱근 구하기였죠?
따라서 다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사칙연산한다. 제곱근 구한다, 세제곱근 구한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