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공부는 나아지거나 나빠지거나 둘 중의 하나다. 흔히 자신을 실력을 꾸준하게 유지시켜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한 번 닦아 놓은 실력은, 또는 한 번 잘 배워 놓은 내용은 잊어먹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단순하게 받아들인다면 크나큰 잘못이 생길 수 있다.
공부는 신체적인 활동과는 다르다. 육체적인 기술은 단순한 반복만으로 유지되고 심지어 발전된다. 육체적인 기술과는 달리 공부는 정신적이다. 정신적인 활동은 반복을 통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고여 있는 생각은 반드시 뒷걸음하게 된다.
하나의 개념, 하나의 생각일지라도 또 다른 여러 가지 개념, 여러 가지 생각, 여러 가지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의 개념을 자신의 마음속 무언가에 단단히 묶어 놓는다 해도, 그에 연결된 다른 많은 개념들과 생각들이 변하면 어떻게 될까?
심지어 사람들은 단순한 기억에서조차, 실제로는 확인되었어야 할 암묵적인 가정으로, 그 기억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몇 가지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의식하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것이건 많은 가정이 숨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마술 공연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술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그 숨어있는 가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구태여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정들을 비틀고 역이용하여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놀랍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어떤 내용이나 사건을 기억한다고 했을 때 의식하지 못하는 많은 암묵적인 상황이나 지식들을 그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음은, 다른 많은 상황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조차 많은 가정이 쓰여지고 있는데, 하물며 어려운 지식이나 내용을 공부할 때는 어떠하겠는가? 어떤 내용을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고 의식적으로 느낄 수 없는 가정들이 많이 쓰여지고 있다. 처음 배울 때에는 그런 암묵적 가정들이 별로 딴지를 걸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떻게 될까? 일단 까먹는 게 문제다. 그래서 열심히 기억을 반복한다고 해 보자. 이번에는 암묵적 가정들이 문제다.
암묵적 가정들이 의식적으로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할수록 내용에 대한 이해가 형식화하며 단순암기로 바뀌어간다. 자신의 머리가 학습한 내용을 발전적으로 자기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용어의 나열로 화석화시킨다. 결과는 당연히 안 좋다. 시간이 지날수록 응용력이 차례차례 떨어진다. 학습한 내용의 단순한 변형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특히 입시공부에서는 더욱 그렇다. 복습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만 반드시 발전을 만들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 주제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빨라졌다거나
- 계산이나 풀이과정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하였다거나
- 특정 단계에서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거나
- 더 나아가 주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나 해법을 만들었다거나
등등 어떠한 것이건 발전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육체적인 기술조차 반복함으로써 단지 유지되는 것만이 아니다. 정교해지고 빨라지지 않는가? 멈추는 것은 없다. 단지 상승하거나 하락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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