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수를 세 볼 수 있다.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1) 모든 양의 유리수는 반드시 나타난다. 안 나타난다고 가정하고, 안 나타나는 기약분수 중에서 분모가 제일 작은 것, 그리고 그 분모를 갖는 유리수 중에도 여럿이 안 나타날 수도 있는 거니깐 다시 분자가 제일 작은 수를 찾습니다.
유클리드가 원론에서 말합니다. 전체는 항상 부분보다 크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말합니다. 긴 선분이 짧은 선분보다 많은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바로 바퀴의 역설에서 생각해 보았던 문제입니다. 짧은 원의 둘레의 길이와 긴 원의 둘레의 길이가 같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일대일대응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뽑아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한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
칸토어는 수학의 역사상 처음으로 무한에 직접 대면한 수학자입니다. 그리고 무한끼리도 서로 구분될 수 있다는 생각, 무한도 다 같은 무한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아니 증명을 연이어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칸토어의 집합론은 당대 수학의 주류였던 수학에서의 구성주의자들에게 대립되는 이론으로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어떤 성질을 갖는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햘 때, 만약 그 성질을 갖는 어떤 대상이 존재하지 않음을 가정한 뒤에 이로부터 모순을 이끌어냈다 해도 그 대상의 존재가 증명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구성주의자들의 입장이다. 한마디로 실제로 만들어 보여줘라는 입장입니다.
칸토어가 처음 수학에 발을 들여놓을 때 강의를 들었던 레오폴트 크로넥커는 매우 직설적인 성격으로 칸토어의 이론에 반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미 원주율 파이가 무리수임을 넘어 초월수라는 증명을 접하고는 실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데 그런 증명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베를린 대학에 강연을 온 프란츠 린데만에게 공개적인 면박을 주었다는 일화가 전합니다. 정신적인 충격을 겪으면서 미타그레플러와 같은 당대의 뛰어난 수학자들, 심지어 무한에 대한 생각을 서로 주고받던 리하르트 데데킨트와도 차례차례 멀어져 갔고, 그 즈음부터 깊은 우울증 증세를 보이면서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여서는 수학을 기피하였지만 다시 한 번 위대한 증명을 선보입니다. 1891년 대각선 논법으로 이름 붙여진 실수의 무한성, 셀 수 없는 무한성에 대한 간단한 증명을 발표하였답니다.
그 위대한 증명을 지나쳐 갈 수 없겠죠?
처음부터 칸토어의 생각의 획기적인 성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또 한명의 위대한 수학자 힐버트는 1925년의 한 강연에서 “누구도 칸토어가 우리를 위해 창조한 낙원에서 우리를 추방할 수 없다”라고 두둔했지만 칸토어는 1918년 1월 6일 자신이 강의했던 할레의 대학 정신병원에서 생을 이미 마감한 뒤였습니다.
자유로움이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하시죠? 위대한 수학자들의 반열에서 본다면 엄밀함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나 봅니다!!
저희 영상의 이름인 증명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바로 이 칸토어의 글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